이제 우리는 AI로 기획안을 작성하고, 디자인을 하고, 개발과정을 거쳐 실제 작동하는 시제품까지 제작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까지 개발자와 디자이너, 기획자가 나누어 하던 일의 경계가 흐려진다.
이러한 작업을 할 수 있는 개인에게 AI는 분명 기회가 될 것이다. 이전에는 혼자 시도하기 어려웠던 일도 시작할 수 있으니까. 그러나 ‘배경’이 없는 사람은 어떨까?
나는 행위성의 느낌과 노동을 구분한 글에서 아이에게 무엇을 하도록 남겨둘 것인지 물었다. 그때 노동은 시간을 많이 들이거나 일부러 고생하는 일이 아니었다. 의미를 만들고, 가설을 세우고, 자기 규칙을 형성하는 활동을 가리켰다. 지금 AI와 함께 일하는 개인에게 요구되는 능력을 생각해보면, 그 질문이 다른 자리에서 되돌아온다.
AI에게 일을 맡기려면
AI를 활용하는 업무에서 ‘오케스트레이션’이 중요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일을 나누어 맡기고 결과를 이어 붙이되, 목적에 맞는지 살피며 다음 작업을 정하는 일. 여러 도구를 동시에 사용하는 멀티태스킹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각각 그럴듯한 결과 사이에서도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판단하고, 어느 부분을 보완할지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가령 AI를 사용하여 고객에게 제안할 서비스를 만들었다고 해보자. 설득력 있는 기획안에 화면 구성도 매끄럽다. 하지만 그 고객에게 정말 필요한 것인지, 현장에서 감당할 수 있는 방식인지까지 산출물의 완성도가 알려주지는 않는다. 그 일을 해보며 알게 된 제약, 사람들의 반응, 이전에 실패했던 이유가 판단의 재료가 된다. 경험이 많다는 이유만으로 AI의 답을 잘 판별하는 것은 아니지만, 무엇을 확인해야 하는지조차 모르는 상태에서는 그럴듯함을 벗어나기가 더 어렵다.
Lee 등의 지식노동자 연구에서 참여자들은 AI를 쓰면서 정보의 검증, 작업의 방향과 품질을 관리하는 데 사고가 필요해졌다고 보고했다. 익숙하지 않은 분야에서는 답을 확인하고 개선하기 어렵다는 응답도 나왔다. 자기보고를 바탕으로 한 연구지만, 결과를 만드는 수고가 줄었다고 판단하는 일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Lee, H.-P., et al. (2025). The Impact of Generative AI on Critical Thinking: Self-Reported Reductions in Cognitive Effort and Confidence Effects From a Survey of Knowledge Workers. CHI ’25, Article 1121.
그러면 오케스트레이션을 할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맡은 일의 목적을 이해하고 구체적인 지시로 옮길 수 있어야 하며, 어떤 결과를 받아들일지 기준을 세울 수 있어야 한다. 실제로 해본 뒤에는 그 기준까지 고칠 수 있어야 한다. 주체성이 필요하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그 이름을 붙이는 것만으로 이런 판단이 생기는 과정까지 설명되지는 않는다.
기업은 이미 AI를 전제로 필요한 역할과 역량을 다시 정하고 있다. LG CNS는 AX 직무별 역할·역량 체계를 마련해 채용 기준으로 활용하겠다고 밝혔다. 교육과 프로젝트 경험, 기술 평가를 연결한 사내 자격도 소개한다.LG CNS (2025년 5월 26일). LG CNS, AI 인재 확보 나선다.
비공개로 전해 들은 국내 대기업의 기술 역량 인사평가 이야기도 이와 닿아 있다. 다만 공개 자료로 확인한 사례와 같은 근거로 제시할 수는 없다.
즉, 이 시대가 말하는 AX는 누가 어떤 일을 맡고, 무엇을 할 수 있는 사람으로 인정할지를 판별하는 기준이다.
그러나 전사적으로 직원들에게 AI를 지급하니 개개인이 이전보다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조직의 기준이 되어버리면, 이제는 모두가 그만큼은 해내야 자리를 지킬 수 있다는 압박이 된다. 배울 시간보다 되려 맡아야 할 일의 범위가 먼저 커질 수도 있다. 오케스트레이션이 중요해졌다는 말 다음에는, 그것을 할 사람은 어떻게 길러지는가라는 질문이 따라온다.
처음 배우는 사람에게 요구되는 것
이미 일을 아는 사람이 AI로 더 많은 결과를 만들 수 있다면, 신입을 뽑아 가르치는 것보다 그 사람에게 일을 맡기는 쪽이 매력적일 것이다. 신입은 질문하고, 틀리고, 다른 사람이 다시 확인해야 하는 시간을 필요로 한다. 이 모든 과정은 ‘비용’으로 취급된다.
그런데 잠시 돌이켜 생각을 해보면 지금 일을 잘하는 사람도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한국노동연구원의 『AI와 노동의 공존』은 자료조사와 요약, 초안 작성의 AI대체가 신입의 도제식 학습과 교육 유인을 약화시킬 수 있는 경로를 논의한다.한국노동연구원 (2025). AI와 노동의 공존. 연구보고서 2025-11, 제4장. 그 일은 결과를 얻는 수단이면서, 처음 배우는 사람이 결과를 이해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옛날의 반복 작업을 그대로 남겨두자는 말은 아니다. 앞으로는 일을 AI에 넘겼을 때, 그 일을 직접하며 쌓던 경험을 어떤 방식으로 마련할 것인가를 묻는 것이다.
첫 경력을 선택하는 사람에게는 여기에 다른 문제가 겹친다. 점차 그 입구가 좁아지는 대기업 인턴십에 들어갈 수 없다면 어디에서 경험을 쌓을 것인가. 중소기업에서 일하며 배울 수 있더라도, 그 경력이 자신이 원하는 다음 자리로 이어지기 어렵다고 여긴다면 선뜻 들어가기 어렵다. 일할 곳이 있다는 것과 그곳을 다음 경력의 출발점으로 믿는 것은 다르다.
캐치의 2025년 Z세대 구직자 조사에서 지원 경험이 있는 응답자에게 지원한 기업 유형을 복수로 물었더니, 대기업은 60%, 중소기업은 19%였다. 플랫폼 응답자에 한정된 결과지만, 희망하는 회사가 아니라 실제 지원 경험을 물었다는 점은 눈여겨볼 만하다. 중소기업에 지원하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낮은 연봉이었고, ‘경력 개발이 어렵다’는 응답도 있었다.진학사 캐치 (2025년 10월 31일). 대기업 쏠림 여전… 구직자 80% ‘중소기업 지원 안 해’ 그 이유는?
일자리이동통계에서도 중소기업에서 옮긴 사람들의 다음 직장은 대부분 다른 중소기업이었다.국가데이터처 (2026년 6월 4일). 2024년 일자리이동통계. 즉, 현재 ‘청년들의 눈이 높다’고 말하려면, 지금의 조건뿐 아니라 어떤 경력의 연결을 기대하며 선택하는지도 함께 보아야 한다.
2026년 8월 고용동향에서는 청년 고용률이 내려가는 동안 놀랍게도 사십 대와 오십 대의 고용률이 올랐다.국가데이터처 (2026년 9월 9일). 2026년 8월 고용동향. 한국은행의 경력직 채용 연구는 첫 경력을 쌓으려는 사람이 불리해지는 경로를 살피고,한국은행 (2025년 2월 4일). 경력직 채용 증가와 청년 고용. BOK 이슈노트 제2025-1호. AI와 고용을 다룬 후속 연구는 AI의 영향이 채용 관행과 사내훈련의 변화 등에 겹쳐 있음을 지적한다.한국은행 (2026년 8월 18일). 청년고용 위축, AI탓인가? 변화하는 경력 사다리와 대응 과제. BOK 이슈노트 제2026-19호.
내가 세대 간 견해 차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한쪽에서는 AI가 있으니, 신입을 길러야 할 이유가 줄어든다고 본다. 다른 쪽에서는 어디에서 쌓은 경험이 자신이 원하는 경력으로 이어질지를 더 까다롭게 따진다. 조직은 이제 ‘제로투원’이 가능한 사람을 요구한다. 그러나 처음 일을 배울 기회와, 그렇게 쌓은 경력을 다음 기회로 인정받을 경로가 함께 약해진다면 그 요구에 답할 수 있는 사람은 어떻게 만들어질 수 있는가.
제로투원이라는 영업 능력
그렇다고 개인은 조직이 자신을 길러주기만을 기다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공무원이 아닌 이상 영원한 직장은 없고, 회사를 나오게 되면 당장 먹고사는 문제가 남는다. 개인이 AI로 산출물을 만들어낼 수 있어도 그 일을 맡기는 사람이 없다면 소득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그렇기에 더더욱 ‘제로투원’이 중요해진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제로투원은 sales skill, 실제 돈을 벌어들이는 영업 능력이다.
가령 AI로 상품 소개 페이지와 광고 시안을 빠르게 만들 수 있다고 해보자. 만들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누군가가 돈을 내고 일을 맡기지는 않는다. 상대가 어떤 고객을 얻으려는지, 왜 지금 그 작업이 필요한지 알아보고, 내가 제공할 가치와 조건을 제안해야 한다. 그 제안이 상대를 설득해 실제 의뢰로 이어질 때 비로소 돈을 버는 일이 생긴다.
앞서 말했듯 오케스트레이션은 맡은 일을 AI와 수행하는 데 필요하다. 영업은 그 일을 맡길 사람을 찾고, 왜 내게 맡겨야 하는지 설득하는 데 필요하다. 조직 안에서는 다른 담당 부서가 고객을 확보하고 일감을 나눠준다. 그러나 그 역할 밖에서 스스로 돈을 벌어야 한다면, 결과를 만들 수 있다는 것과 그 결과를 팔 수 있다는 것 사이의 간격을 직접 메꿔야 한다.
영업에도 AI를 활용할 수 있다. 고객에 관한 자료를 정리하고 제안서의 여러 안을 만드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그래도 실제로 어떤 필요를 붙잡고, 무엇을 약속하며, 어떤 조건으로 제안할지는 판단해야 한다. 상대가 거절했을 때 가격을 바꿀지, 제안을 고칠지, 다른 고객을 찾아갈지도 정해야 한다. AI가 만든 제안서의 설득력과 실제 고객이 돈을 내는지는 같은 결과가 아니다.
일을 수행할 때 AI를 활용하고, 그 결과를 실제 거래로 이어갈 수 있는 사람에게는 시도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진다. 고객을 만나고 일해 보며 얻은 경험도 다음 제안에 쓸 수 있다. 반대로 기존 의뢰가 파트너십으로 자리 잡지 않은 이상 스스로 새로운 거래처를 뚫지 못한다면, 생산 도구가 좋아지는 것만으로 그 자리를 메우기는 어렵다. 지시된 결과만 내놓는 동안 자기 역량을 쌓을 기회까지 줄어든다면, 도구를 쥐어도 제자리걸음만 할 수 있다. 변화하는 일의 기준 속에서는 정체도 뒤처짐이 된다. 내가 걱정하는 AI시대 ‘격차’는 이렇게 누적되는 것이다.
영업 능력이 있다고 성공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조직이 배분해 주는 일 밖에서 돈을 벌어야 하는 상황을 생각하면, 실제로 일을 따내는 능력은 생계와 바로 연결된다. 그때 가서 갑자기 스스로 판단하고 제안하라고 요구한다면, 그 토대는 어디에서 길러져야 했는가.
AI의 작업을 엮는 일과 사람에게 구매나 의뢰를 제안하는 일은 다르다. 하지만 두 경우 모두 내가 하려는 일을 구체화하고, 돌아온 결과나 반응을 읽어 나의 다음 행동을 정해야 한다. 나는 여기서 판단의 기준과 목적을 스스로 다루는 경험을 다시 묻게 된다.
최근 일론 머스크가 꽂힌 SI(Super Intelligence)를 다룬 『슈퍼인텔리전스』의 저자 보스트롬은 지능과 최종 목표를 구분하지만,Nick Bostrom (2012). The Superintelligent Will. 인간이 이미 바람직한 목적을 알고 있다고 끝내지는 않는다. 『슈퍼인텔리전스』의 간접 규범성은 어떤 가치를 택할지 숙고하는 작업의 일부까지 그가 가정하는 초지능에 맡길 가능성을 다룬다.Nick Bostrom (2014). Superintelligence. 13장, 209–212쪽. 목적을 정하는 일을 인간만의 자리로 남겨두면 문제가 풀린다는 생각도 충분하지 않다.
나 역시 AI에게 가설을 건네고 반론을 찾게 한다. 돌아온 답을 보며 처음의 질문이나 기준을 바꾸기도 한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AI를 만나기 전에 완성된 목적을 갖는 일이 아니다. AI가 제시한 이유도 검토하고, 잠정적으로 선택해 보고, 그 결과를 겪으며 자기 판단을 고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사람이 자기 삶을 바꾸는 제안을 그렇게 다루어볼 경험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AI시대에 태어나고 자라나는 아이에게는 이 문제가 더 앞에서 시작된다. 이미 만들어진 판단을 어디까지 위임할지 정하는 동안에도 사람은 계속 배우지만, 아이는 그 판단의 기준부터 만들어가는 단계이다. 여기서 문제의식을 갖고 보아야 할 부분은 이제 아이가 상대방이 무엇을 원할지, 어떤 이유를 받아들일지, 상대의 반응을 어떻게 읽을지를 처음 익히는 과정에 AI가 들어온다는 것이다.
관계를 역할놀이와 그림으로 풀어보기
영업에서 필요한 판단을 다시 생각해 보면, 그 맞은편에는 돈을 내고 일을 맡길지 결정하는 사람이 있다. 상대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읽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해야 한다. 설사 그 제안을 거절하거나 다르게 이해했을 때도 나는 설득해야 한다. 그렇기에 어려서부터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경험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아무런 준비 없이 거래가 필요한 순간에 갑자기 상대를 이해하고 자기 뜻을 설명할 수 있기를 기대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나는 그 시작을 아이들의 역할놀이에서 살펴보려 한다. 인물이 무엇을 원하고 누구와 어떤 관계를 맺는지 정하고, 그 인물의 관점에서 응답해보는 일이다. 함께 노는 사람이 있다면 내가 정한 이야기와 그 사람이 원하는 이야기를 맞춰보아야 한다. 내가 만든 규칙 때문에 친구가 계속 싫은 역할을 맡아야 한다면, 이야기가 그럴듯하게 완성되는 것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어린이 철학, P4C에서 중요하게 본 것도 서로 이유를 주고받으며 판단을 고치는 일이었다. 자기 뜻을 갖는 일과 타인의 뜻을 만나는 일은 떨어져 있지 않다. 관계 속에서 내 뜻을 표현해 보고, 돌아온 반응을 다루는 경험이 필요하다.
역할놀이에 드로잉을 연결하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림은 아이가 만든 뜻을 다른 사람이 보고 물을 수 있는 산출물로 남긴다. 인물의 행동과 관계를 그림으로 표현하면, 그 앞에서 무엇을 그렸고 왜 그렇게 그렸는지 설명할 수 있다. 내가 드로잉에서 보려는 것은 자기 생각을 산출물로 드러내고 그것을 상대에게 설명하는 과정이다. 그림만 보고 아이의 뜻을 짐작하는 데서 끝내지 않고, 아이의 말과 몸짓, 이후에 바꾸어 그리는 것까지 함께 보려 한다.
내가 경험한 미술영재교육에도 재료와 기법을 자유롭게 고르는 일과, 왜 그렇게 골랐는지 설명하는 일이 함께 있었다. 해본 일이 있기에 되돌아볼 것이 생겼고,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면서 자기 작업을 다시 바라보게 되었다. 완성된 그림만으로는 그 과정에서 무엇을 판단했는지 알 수 없었다.
한국의 교육과정도 이런 경험을 목표로 두고 있다. ‘즐거운 생활’은 상상과 표현, 자유로운 놀이를 제시하고,경기도교육청 (2024). 2022 개정 교육과정 각론 조망도. 성취기준 2즐02-04, 2즐04-02. 교육부의 2026년 업무계획은 주도적·비판적 AI 활용을 위해 질문 중심 수업을 확대하겠다고 한다.교육부 (2025년 12월 12일). 2026년 교육부 업무계획. 즉, 교육과정에 목표가 없는 것이 아니라, AI와 함께하는 활동 안에서 그 목표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가 문제다.
충북 단양유치원의 극놀이 사례에서는 유아들이 아동극을 제안하고 역할을 정했으며, 교사는 아이들의 말투와 설명을 반영해 AI로 대본과 그림, 노래를 준비했다. 네 살 유아와 교사가 함께한 사례다. 이미 아이의 선택과 교사의 중개가 작업 안에 들어 있다.충청북도교육청 (2025). 2025 디지털 기반 유치원 운영 사례집, 60–64쪽. 그렇다면 아이 의견이 결과물에 반영되었는지를 넘어, AI가 만든 것을 본 뒤 아이가 무엇을 더하고 바꾸었는지까지 볼 수 있지 않을까.
Mottweiler와 Taylor의 연구는 역할놀이 인물을 창의적으로 구성하는 것과 별도의 이야기 과제에서 보인 창의성 사이의 관련성을 보고했다. 역할놀이가 창의성을 길러준다는 인과를 입증한 것은 아니다. 그래도 아이가 인물을 만들고 그 이야기를 이어가는 활동을, 완성된 결과와 함께 살펴볼 단서가 된다.Mottweiler, C. M., & Taylor, M. (2014). Elaborated role play and creativity in preschool age children. Psychology of Aesthetics, Creativity, and the Arts, 8(3), 277–286.
여기에 AI가 들어오면 무엇이 달라질까. StoryDrawer는 아이가 말한 내용을 그림으로 나타내거나 이야기와 관련된 추상적인 밑그림을 제공했다. 연구진은 이런 기능이 활동 중 이야기의 구체화와 새로운 연상을 도운 양상을 보고했다.Zhang, C., et al. (2022). StoryDrawer: A Child–AI Collaborative Drawing System to Support Children’s Creative Visual Storytelling. CHI ’22, Article 311. 긍정적인 측면에서 AI의 개입은 아이가 창작을 이어갈 재료가 될 수 있다.
그런데 재료를 얻는 동안 만들려던 것 자체도 달라질 수 있다. Newman 등의 연구에서 아동들은 생성형 AI에 건네는 요청과 설명을 고쳤고, 원하는 결과를 얻기 어려워 다른 구상으로 옮겨가기도 했다.Newman, M., et al. (2024). “I want it to talk like Darth Vader”: Helping Children Construct Creative Self-Efficacy with Generative AI. CHI ’24. 달라진 것은 프롬프트만이 아니었다. 만들려던 내용도 AI와 작업하는 과정에서 달라지곤 했다.
이 지점에서 목적을 먼저 세우면 된다는 말이 다시 어려워진다. 아이가 끝까지 처음 뜻을 지켰는지만 보아서는 충분하지 않다. 다른 해석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았을 수도 있고, 자기 뜻을 표현하기 어려워 그쪽으로 따라갔을 수도 있다. 완성된 이야기가 비슷해도 그 과정은 다를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아이가 AI의 말을 듣고 무엇이라고 답했는지와, 그 뒤에 직접 무엇을 만들었는지를 연결해서 보려 한다.
오독 이후 아이가 만드는 것
가령 아이가 두 인물이 함께 모험 길에 나서는 장면을 그렸다고 해보자. 그런데 AI는 한 인물이 다른 인물을 피해 달아나는 장면으로 읽는다.
아이는 “그게 아니야”라고 할 수 있다. 함께 모험을 떠나는 것이라고 설명할 수도 있다. 초기 오독 구상에서 내가 눈여겨본 것도 이런 자기 진술이었다. 상대의 해석을 바로잡으면서 자기 작업을 설명하는 상황. 미술교육에서 중요하게 여겼던 장면과도 닮아 있었다.
그러나 설명했다는 사실만으로 좋은 경험이었다고 판단할 수 있을까.
Li 등은 아동이 AI 또는 사람과 이야기를 만들 때 의사소통의 어긋남에 어떻게 대응하는지 살폈다. 말을 반복하거나 바로잡고, 추가 설명을 요청하며, 상대의 잘못된 이해에 맞추는 대응도 나타났다.Li, Z., Thomas, T., Yu, C.-L., & Xu, Y. (2024). “I Said Knight, Not Night!”: Children’s Communication Breakdowns and Repairs with AI Versus Human Partners. IDC ’24, 781–788. Choi 등의 Tinker Tales에서도 아이가 AI를 정정하는 장면이 있었고, 아이의 기여가 AI가 다시 쓴 이야기에 반영되는지를 살폈다.Choi, N., et al. (2026). Tinker Tales: A Tangible Dialogue System for Child–AI Co-Creative Storytelling. SIGDIAL ’26, 25–50. 정정은 이미 관찰된 현상이다. 그렇다면 나는 그 뒤에 아이가 직접 이어갈 창작을 더 살펴보아야 한다.
그림을 다룬 Yamada의 연구에서는 다른 사람이 예상과 다르게 읽은 뒤 아이가 대상의 특징을 더 자세히 그린 양상이 나타났다. 다만 아이에게는 상대가 알아볼 수 있도록 같은 대상을 다시 그리라는 과제가 주어져 있었다.Yamada, M. (2020). 幼児における絵の表現調整の発達―他者とのミスコミュニケーション場面での検討―. 教育心理学研究, 68(1), 23–32. 전달할 대상은 정해져 있었다. 그러면 같은 대상을 다시 알아보게 만드는 데서 나아가, 뒤의 이야기를 새로 만들게 하면 어떻게 될까.
아이는 “지금은 도망가는 게 아니야”라고 바로잡으면서도, 도망간다는 설정을 다음 장면에는 가져갈 수 있다. 원래 장면의 뜻은 유지하지만, 그 뒤에는 다른 이야기를 만들고 싶어질 수 있는 것이다. 이 경우 AI의 말을 거절했다고 해야 할까, 받아들였다고 해야 할까. 둘 중 하나만 고르면 아이가 새롭게 만든 이야기를 놓치게 된다.
Hammond의 ‘생산적 오독’은 의도와 다른 해석이 의미 있는 구상의 변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개념적 단서를 준다. 효과를 입증한 아동 실험이 아니라 앞으로 검증할 설계 방향을 제안한 논의다.Hammond, T. A. (2026). Designing for Productive Misinterpretation: Sketch as a Creative Language and a Model for AI-Supported Ideation (Work-in-Progress). ASEE Annual Conference & Exposition. 내 연구에서도 다른 해석을 건넸다는 사실과 그것이 도움이 되었다는 판단을 구분해야 한다. 설명하느라 흐름이 끊길 수도 있고, 설명하면서 다음 장면이 구체화될 수도 있다. 재료가 되면서 동시에 부담이 되는 경우까지 보아야 한다.
여기서 제안과 오독을 구분할 이유가 생긴다. 같은 ‘달아난다’는 설정이라도 “다음에는 달아나게 해보면 어떨까”와 “지금 달아나고 있구나”는 다른 말을 건넨다. 앞에서는 새 설정을 쓸지가 문제이고, 뒤에서는 상대가 내 뜻을 제대로 알아들었는지도 문제가 된다. Clark와 Brennan의 공동 이해에 관한 논의는 그 이해를 확인하고 조정하는 일을 설명한다.Clark, H. H., & Brennan, S. E. (1991). Grounding in communication. In Perspectives on Socially Shared Cognition (pp. 127–149). APA. 그런데 알아듣게 만드는 일과 상대의 말을 창작의 재료로 가져가는 일은 어디에서 만나고 갈라지는가.
현재 연구에서는 한국의 만 7–8세 아동을 대상으로,Carpendale, J. I., & Chandler, M. J. (1996). On the distinction between false belief understanding and subscribing to an interpretive theory of mind. Child Development, 67(4), 1686–1706. 상상 속 친구가 등장하는 장면을 그리고 설명하는 활동을 살펴보려 한다. 같은 대안 설정을 다음 이야기로 제안하는 경우와 현재 장면의 뜻으로 읽는 경우를 비교한다. 각 아이가 미리 표현한 인물의 목적이나 관계를 바탕으로 두 후보 발화를 준비하고, 한 아이에게는 그중 하나만 들려준다. 한 차례 발화 이후 아이가 무엇을 바로잡고, 무엇을 유지하거나 바꾸며 다음 장면을 그리거나 설명하는지 살핀다.김준엽. 「오독하는 AI와 아동의 창작」. W4 과제 원고.
아직 실증 결과는 없다. 이 비교가 오독의 우월성이나 장기적인 주체성 발달을 보여줄 수도 없다. 다만 아이가 처음 표현한 뜻을 AI의 응답 이후 어떻게 다시 다루는지는 더 가까이에서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오독은 이 과정을 보기 위해 선택한 하나의 조건이다.
이 활동이 훗날의 업무 판단이나 영업 능력으로 어떻게 이어지는지는 지금의 연구만으로 알 수 없다. 내가 여기서 먼저 보려는 것은 관계 속에서 자기 뜻을 산출물로 내놓고, 상대가 다르게 읽었을 때 설명하거나 바꾸어가는 경험이다. 스스로 제안하고 관계를 맺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면, 그 경험이 생겨나는 과정부터 살펴야 한다.
예전에 나는 노동이 줄어들어도 여가가 곧 자유가 되지는 않는다고 썼다. 소득을 얻어야 할 때에는 자기 일을 찾을 토대가 필요하고, 생활이 보장된 뒤에도 무엇을 하며 누구와 살아갈지는 남는다. 이번 에세이는 영업 능력이 절실해질 수 있는 생계의 문제에서 출발했지만, 아이에게 마련하려는 경험은 돈을 버는 일뿐 아니라 자기 삶을 꾸리는 일까지 이어져야 한다.
이 글의 첫머리에 『토이 스토리 3』의 어린 앤디를 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앤디는 장난감에 역할을 주고, 사건을 만들고, 그들 사이의 관계를 놀이로 이어간다. 시리즈의 첫 세 편을 돌아보며 내가 다시 보고 싶은 것도, 아이가 장난감과 함께 자기 이야기를 만들어가던 그 시간이다.
3편의 마지막에서 앤디는 보니에게 장난감들을 하나씩 소개하며 물려주고, 둘은 함께 논다.Pixar. Toy Story 3. 작품 소개. Anime Superhero. Toy Story 3 Virtual Roundtable with Director Lee Unkrich & Producer Darla Anderson. 장난감을 건네는 그 장면에서 나는, 한 아이가 소중히 여겼던 관계가 다른 아이의 상상 속에서 이어질 가능성을 본다.
그 장난감들을 이어받았던 보니는 『토이 스토리 5』(2026)에서 여덟 살이 되어 스마트 태블릿 릴리패드를 만난다. 릴리패드는 댄스 수업 친구들과 온라인으로 대화하도록 권하고, 보니에게 무엇이 좋은지에 대해서도 자기 판단을 내세운다.Pixar. Toy Story 5. 작품 및 캐릭터 소개. 친구와 연결되는 통로가 되는 동시에, 아이가 무엇을 하면 좋을지 제안하는 상대가 되는 것이다.
나는 이 변화에서 아이가 자기 뜻을 만들어가는 환경이 달라지고 있음을 본다. 장난감 대신 화면을 골랐다는 사실만으로 그 경험을 판단할 수는 없다. 릴리패드처럼 놀이의 방향과 관계의 방식을 제안하는 기기와 함께할 때, 아이는 무엇을 받아들이고 무엇을 바꾸며 자기 이야기를 이어갈까. 처음에 물었던 ‘배경’이 없는 사람의 문제도 이 자리로 돌아온다. 스스로 판단하고 제안할 수 있게 되는 경험은 어디에서 시작되는가.
내가 찾아보고 싶은 것은 AI 시대에 태어나는 세대들이 살아갈 방법이다. AI 교육을 더 많이 시키는 방법에 앞서, 다른 생각을 만나 자기 뜻을 세우고 고쳐보는 경험부터 살펴보려 한다.
- ¹ Lee, H.-P., et al. (2025). The Impact of Generative AI on Critical Thinking: Self-Reported Reductions in Cognitive Effort and Confidence Effects From a Survey of Knowledge Workers. CHI ’25, Article 1121.
- ² LG CNS (2025년 5월 26일). LG CNS, AI 인재 확보 나선다.
- ³ 한국노동연구원 (2025). AI와 노동의 공존. 연구보고서 2025-11, 제4장.
- ⁴ 진학사 캐치 (2025년 10월 31일). 대기업 쏠림 여전… 구직자 80% ‘중소기업 지원 안 해’ 그 이유는?
- ⁵ 국가데이터처 (2026년 6월 4일). 2024년 일자리이동통계.
- ⁶ 국가데이터처 (2026년 9월 9일). 2026년 8월 고용동향.
- ⁷ 한국은행 (2025년 2월 4일). 경력직 채용 증가와 청년 고용. BOK 이슈노트 제2025-1호.
- ⁸ 한국은행 (2026년 8월 18일). 청년고용 위축, AI탓인가? 변화하는 경력 사다리와 대응 과제. BOK 이슈노트 제2026-19호.
- ⁹ Nick Bostrom (2012). The Superintelligent Will.
- ¹⁰ Nick Bostrom (2014). Superintelligence. 13장, 209–212쪽.
- ¹¹ 경기도교육청 (2024). 2022 개정 교육과정 각론 조망도. 성취기준 2즐02-04, 2즐04-02.
- ¹² 교육부 (2025년 12월 12일). 2026년 교육부 업무계획.
- ¹³ 충청북도교육청 (2025). 2025 디지털 기반 유치원 운영 사례집, 60–64쪽.
- ¹⁴ Mottweiler, C. M., & Taylor, M. (2014). Elaborated role play and creativity in preschool age children. Psychology of Aesthetics, Creativity, and the Arts, 8(3), 277–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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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¹⁸ Choi, N., et al. (2026). Tinker Tales: A Tangible Dialogue System for Child–AI Co-Creative Storytelling. SIGDIAL ’26, 25–50.
- ¹⁹ Yamada, M. (2020). 幼児における絵の表現調整の発達―他者とのミスコミュニケーション場面での検討―. 教育心理学研究, 68(1), 23–32.
- ²⁰ Hammond, T. A. (2026). Designing for Productive Misinterpretation: Sketch as a Creative Language and a Model for AI-Supported Ideation (Work-in-Progress). ASEE Annual Conference & Exposition.
- ²¹ Clark, H. H., & Brennan, S. E. (1991). Grounding in communication. In Perspectives on Socially Shared Cognition (pp. 127–149). APA.
- ²² Carpendale, J. I., & Chandler, M. J. (1996). On the distinction between false belief understanding and subscribing to an interpretive theory of mind. Child Development, 67(4), 1686–1706.
- ²³ 김준엽. 「오독하는 AI와 아동의 창작」. W4 과제 원고.
- ²⁴ Pixar. Toy Story 3. 작품 소개. Anime Superhero. Toy Story 3 Virtual Roundtable with Director Lee Unkrich & Producer Darla Anderson.
- ²⁵ Pixar. Toy Story 5. 작품 및 캐릭터 소개.